크롬홀까지 하루라고 했다.
도로는 어제보다 넓어졌다. 란델 이후로 수레 바퀴 자국이 많아졌고, 가끔 반대편에서 오는 행상인과 마주쳤다. 행상인들은 리나의 갑옷과 검을 보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왕실 기사에 대한 반응이었다. 나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리나가 말에 탄 채로 전방을 보며 말했다.
"크롬홀은 란델과 다릅니다."
"어떻게요?"
"성벽이 있습니다. 자경단도 있고, 시장도 크고, 사람이 많습니다. 란델 같은 작은 마을과는 규모가 다릅니다."
"자경단이면 치안도 있겠군요."
"있습니다. 하지만 남쪽 도로 쪽은 좀 불안하다고 들었습니다. 마왕군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으니까."
마왕군.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리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단단해졌다. 나는 마왕군이 어떤 존재인지 아직 잘 몰랐다. 왕궁에서 설명을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실감은 아마 직접 마주쳐봐야 올 것이다.
"크롬홀에 가면 일단 뭘 해야 합니까?"
"보급을 보충하고, 남쪽 도로의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마왕군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에 따라 이동 경로가 달라집니다."
리나가 설명하는 동안 나는 도로 옆의 나무들을 봤다. 란델 주변은 밭이 많았는데, 지금은 숲이 짙어지고 있었다. 길이 숲 사이로 들어가면서 시야가 좁아졌다.
오후가 되어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이라기보다는 갈림길에 생긴 쉼터였다. 주막 하나, 대장간 하나, 건물 네댓 채가 도로 양편에 늘어서 있었다. 주막 앞에 말뚝이 세 개 있었는데 그중 두 개에 말이 묶여 있었다.
"물이랑 식량을 보충하지요."
리나가 말에서 내렸다. 나도 따라 내려서 다리를 풀었다. 하루 종일 걸어서 발이 아팠다. 리나는 말을 타지만 나는 걷는다. 체력 차이가 나는 건 당연했다.
주막에 들어서니 주인이 손을 닦으며 나왔다. 중년 남자였는데, 리나의 갑옷을 보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기사님이시군요. 어서 오십시오."
"물과 식량을 좀 사겠습니다."
리나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는 동안, 나는 주막 안을 둘러봤다. 탁자 두 개에 의자가 대여섯. 구석에 남자 둘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망토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둘 다 나를 한 번 보고 시선을 거뒀다. 여행자가 많은 갈림길이니 낯선 얼굴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주인이 물통과 마른 빵을 가져오는 동안 나는 주막 벽을 봤다. 나무 벽에 종이 몇 장이 못으로 박혀 있었다. 행상인의 광고 같은 것, 마을 고시 같은 것. 그리고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다. 이 세계의 문자를 아직 모르니까. 하지만 종이 위쪽에 그림이 있었다. 사람 얼굴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특징은 잡혀 있었다. 짧은 머리,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옷, 가죽 조끼 위의 검정 점퍼.
나였다.
"리나 기사."
리나가 돌아봤다. 내가 벽을 가리키자 리나의 시선이 종이로 갔다. 글자를 읽기 시작했는데, 눈이 좁아졌다.
"수배서입니다."
"내용이 뭡니까?"
리나가 한 줄씩 읽어줬다.
"왕실의 권위를 사칭하여 란델 관할 언약 법관의 공무를 방해한 자. 이름 불명, 이세계인으로 추정. 란델 영주의 이름으로 현상금 은화 30닢을 건다."
은화 30닢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많은 겁니까?"
"농부가 한 달 먹고사는 돈의 두 배쯤 됩니다. 적지 않습니다."
주막 주인이 뒤에서 뭔가를 닦고 있었는데, 수배서 쪽을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봤다. 그림과 내 얼굴을 비교하는 눈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법관이 말한 대로였다. 영주에게 보고하겠다고 했고, 보고했다. 하루 만에 수배서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법관이 란델을 떠나기 전에 이미 전령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수배서가 붙기까지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법관은 어제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왕실의 권위를 사칭했다고 되어 있군요."
리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저는 왕실 기사의 자격으로 공식 요청을 한 것인데, 수배서에는 제 이름이 없습니다. 당신만 수배 대상입니다."
"영주 입장에서는 그게 편하겠지요. 왕실 기사를 수배하면 왕실과 충돌하니까. 이름 모르는 여행자를 사칭범으로 몰면 간단합니다."
리나의 입술이 얇아졌다. 불편해하는 것이 보였다. 어제 맹세의 서까지 걸면서 공식적으로 움직였는데, 수배서에는 그 사실이 빠져 있었다. 리나의 행동이 없었던 것처럼 처리된 셈이었다. 어제 맹세의 서까지 걸어가며 법관 앞에 섰던 사람이, 오늘 수배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뜯을까요?"
"뜯어봤자 다른 데도 붙어 있을 겁니다."
나는 수배서를 다시 봤다.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어제 법관의 호위 중 하나가 그린 것일 수도 있다. 특징은 잡혀 있었지만, 얼굴은 정확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옷을 입으면 구분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크롬홀에도 이게 붙어 있을 겁니까?"
"영주의 관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리나가 말했다. "란델은 영주의 직할지이지만, 크롬홀은 자치 성벽도시입니다. 영주의 수배서가 크롬홀에서 효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효력이 없어도 현상금은 유효하겠지요."
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보급품을 가져왔다. 리나가 값을 치르는 동안 나는 구석의 두 사람을 힐끗 봤다. 가죽 갑옷의 남자가 술을 마시며 동료와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는데, 시선이 벽의 수배서를 스치고 나에게로 왔다가 돌아갔다. 우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주막을 나왔다. 리나가 말에 짐을 싣고 출발 준비를 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지요."
걸음을 빨리했다. 도로가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비껴 들어왔는데, 그늘이 많아지면서 주변이 어두워졌다.
한참 걷다가 리나가 말의 속도를 줄였다. 나와 나란히 가면서 전방을 보는 척하며 말했다.
"태호 님."
"네."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려다가 멈췄다.
"몇 명입니까?"
"한 명입니다. 주막을 나올 때부터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습니다. 숲에 들어가면서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아까 주막에 있던 사람 중 하나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뒤를 보면 경계한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나는 계속 걸었다. 등 뒤로 신경이 쏠렸지만, 뒤를 보지 않았다. 산적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긴장이었다. 산적은 정면에서 왔다. 이건 등 뒤에서 오고 있었다. 리나가 말 위에서 시야를 확보하고 있었다.
"현상금 사냥꾼이겠지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여행자일 수도 있습니다."
리나의 말투가 조심스러웠지만, 오른손이 검 손잡이 위에 있었다.
"크롬홀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 속도면 해가 지기 전에 성벽이 보일 겁니다."
해가 지기 전. 아직 두어 시간은 남아 있었다. 숲길이 이어지는 동안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의 존재가 계속 느껴졌다. 리나가 때때로 고개를 살짝 돌려 확인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간격이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수배서가 나온 지 하루밖에 안 됐다. 그런데 벌써 이 길에서 누군가가 반응하고 있다면, 현상금의 금액보다 현상금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돈이 걸리면 사람이 움직인다. 그리고 돈에 반응하는 사람은 논리가 아니라 이해관계로 움직인다.
산적은 공포와 이익으로 넘겼다. 법관은 법리로 넘겼다. 현상금 사냥꾼은 어떻게 넘겨야 하나.
"리나 기사."
"네."
"크롬홀에 들어가면 수배서의 효력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지요?"
"크롬홀이 독자적인 자치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상금 사냥꾼에게는 관할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이 중요합니다."
리나가 내 생각을 먼저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리나가 앞을 보며 말했다. "크롬홀에 가면 당신의 정체가 문제가 됩니다. 용사라고 하면 소문이 퍼지고, 용사가 아니라고 하면 수배서의 사칭범이 됩니다."
"용사라고 하면 안 됩니까?"
"용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합니다. 마왕군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는데, 용사가 왔다고 하면 싸워달라고 할 겁니다."
"싸울 수 없는데."
"그래서 문제입니다."
숲이 끝나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평지가 보이고, 저 멀리 성벽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크롬홀이었다.
리나가 뒤를 한 번 봤다.
"멈췄습니다."
"뒤의 사람이요?"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따라오기를 멈췄습니다.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나오지는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신중한 사람이었다. 수배서를 보고 바로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면서 관찰하고, 성벽 앞에서 멈췄다. 이런 타입은 기회를 기다린다.
"크롬홀에 들어가면 안전할까요?"
"성벽 안에서 현상금 사냥이 공인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벽 밖에서 기다릴 수도 있고, 성 안에서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나는 성벽을 바라봤다. 해가 기울고 있었고, 성벽 위로 깃발이 보였다. 사람들이 성문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입성 검문이 있는 모양이었다.
"들어갑시다."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몰았다. 나도 걸음을 빨리했다.
란델에서는 말로 이겼다. 하지만 말로 이긴 대가가 이렇게 빠르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수배서, 현상금, 그리고 뒤에서 따라오는 그림자. 법관을 넘겼더니 영주가 왔고, 영주의 돈이 사람을 움직이고 있었다.
성문이 가까워지면서 검문 줄이 보였다. 상인들과 농부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면 될 것이다. 리나의 왕실 기사 신분이면 검문은 문제없을 것이다.
하지만 등 뒤의 숲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