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인데 입만 살았습니다
24화

내리막이 끝나고 숲이 다시 빽빽해졌다.


산을 넘으니 지형이 달라졌다. 북쪽의 침엽수림과 달리, 남쪽 사면은 활엽수가 무성하고 덤불이 높았다. 시야가 좁아서 열 걸음 앞도 보기 어려웠다. 유적에서 읽은 글씨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가까운 위협이 있었다. 리나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앞서 걸었다. 벨카가 남쪽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이 사람의 자세를 바꿔놓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경계와는 질이 달랐다. 이 사람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기 냄새가 납니다."


리나가 멈추며 말했다. 바람 방향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도 맡았다. 희미하지만 확실히 나무 타는 냄새였다. 마을이거나 야영지이거나.


"도로 쪽입니다. 우회합니다."


리나가 방향을 틀었다. 덤불 사이로 비스듬히 빠지는 길을 잡았다. 말의 고삐를 잡고 따라갔다. 말이 투덜거리듯 콧김을 뿜었다.


우회하는 동안 소리가 들렸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한 번, 두 번. 규칙적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무기를 다루고 있었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나뭇잎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리나가 나를 보며 손짓했다. 말의 입을 손으로 감싸고 소리를 죽였다.


금속 소리가 멈췄다. 숲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숨을 필요는 없다."


낮은 목소리였다. 남자의 목소리.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사실을 말하는 듯한 톤이었다. 소리의 방향은... 오른쪽. 나무 너머, 열다섯 걸음 정도 거리.


리나의 손이 검을 뽑았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 사람은 검을 소리 없이 뽑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그림자가 보였다. 키가 컸다.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고, 한 손에 창을 들고 있었다. 창날이 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벨카.


노인이 말한 대로였다. 검은 갑옷, 창, 혼자. 남쪽으로 갔다던 사람이 돌아와 있었다. 산길까지 뒤지고 있었다.


심장이 빨라졌다. 거짓말을 할 때와 같은 박동이었지만, 이번에는 쓸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인인데 길을 잃었습니다."


입에서 말이 나왔다. 습관이었다. 위험하면 말부터 꺼내는 것이. 통행증도 있고, 겔투스 가방도 있었다. 이야기는 만들 수 있었다.


벨카가 나무 사이를 지나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얼굴을 봤는데, 생각보다 젊은 삼십 초반이었고 얼굴에 감정이 없었다. 노인이 "눈이 무서웠다"고 했는데, 이해됐다. 이 사람의 눈은 비어 있었다. 적의도 호기심도 없이, 대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물건을 보듯이. 보험 영업을 하면서 수백 명의 눈을 읽어왔지만, 이런 눈은 처음이었다. 읽을 것이 없었다.


"상인은 호위에게 기사검을 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끝났다. 리나의 검을 보고 있었다. 기사검은 일반 검과 모양이 달랐고, 리나가 차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기사의 무기였다. 통행증에는 '호위검객'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검 자체가 거짓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빛은 나오지 않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용사."


벨카가 말했다. 단정이었다.


리나가 앞으로 나섰다. 검을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자세가 달라져 있었다. 크롬홀에서 본 경계 자세가 아니라, 이건 실전 자세였다.


"비키세요."


리나가 나에게 말했다.


"리나 씨 —"


"비키세요."


두 번째는 명령이었다. 기사의 목소리. 뒤로 물러났다. 나무에 등을 붙이고, 말의 고삐를 잡았다.


벨카가 리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 변하지 않았지만, 창을 한 손에서 양손으로 옮겨 잡았다.


리나가 입을 열었다.


"칼에 맹세합니다."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낮고 단단한, 무언가를 걸고 있는 목소리. 이 세계에서 '맹세'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서약은 거짓말보다 무겁고, 어기면 마나가 역류한다. 리나가 지금 칼에 뭔가를 걸었다. 뭘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건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리나의 검에서 빛이 났다. 하얀 빛이 칼날을 감쌌다. 이 사람의 진짜 힘을 처음 봤다.


벨카가 움직였다.


빨랐다. 창이 직선으로 찔러 들어왔다. 리나가 검으로 쳤다. 금속 소리가 숲을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째에 리나의 발이 밀렸다. 흙이 파였다.


네 번째. 리나가 검을 비스듬히 흘렸다. 창날이 빗나가며 나무를 쳤고, 나무가 갈라졌다. 그 사이에 리나가 거리를 좁혔고, 검이 벨카의 갑옷을 스쳤다.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벨카는 흔들리지 않았다. 창대로 리나의 검을 밀어내고, 반대 손으로 리나의 어깨를 쳤다. 갑옷 위였지만, 리나의 몸이 옆으로 날았다. 나무에 부딪히며 멈췄다.


리나가 일어났다. 왼쪽 어깨가 처져 있었다. 빠졌거나 금이 갔다. 하지만 검을 놓지 않았다.


"그만 —"


내가 말하려 했다. 리나가 다시 달려들었다. 검에서 빛이 더 강해졌다. 마나를 더 쏟고 있었다. 세 번 베고, 한 번 찔렀다. 벨카가 세 번을 막고, 찌르기를 피하며 창으로 리나의 옆구리를 쳤다.


소리가 들렸다. 갑옷이 찌그러지는 소리. 리나가 무릎을 꿇었다. 검이 땅에 닿았다.


"리나 씨!"


뛰어가려 했다. 벨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것만으로 발이 멈췄다. 눈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판단하고 있었다. 죽일지 살릴지.


벨카가 리나를 내려다봤다. 리나가 검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에서 빛이 꺼지고 있었다. 마나가 바닥났다.


"기사인가."


벨카가 말했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다.


"왕실 기사단 소속, 리나 카셀."


리나가 대답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벨카가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이세계인."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입을 열어도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 보험을 팔 때도, 중고차를 팔 때도, 크롬홀에서 300명을 상대할 때도 말은 나왔다. 지금은 나오지 않았다.


"아자렐님이 이세계인에 대해 알고 싶어하신다. 소환의 원리도. 살려두겠다."


벨카가 창을 내리고 돌아섰다. 그게 전부였다. 리나가 맹세의 서까지 선언하며 전력을 다했는데, 벨카는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숲이 다시 고요해지자 전투 중에 사라졌던 새소리가 돌아왔다.


리나에게 달려갔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왼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 갑옷이 찌그러진 자리에서 피가 배어나오지는 않았지만, 리나의 얼굴이 하얘져 있었다. 호흡이 얕고 빨랐고,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괜찮습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갈비가... 두세 대." 리나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깨는 빠졌습니다."


어깨를 넣어야 했다. 방법은 알았다. 영화에서 본 것이 전부였지만. 현실에서 해본 적은 없었다. 리나의 팔을 잡고, 관절 방향을 확인하고, 밀어 넣었다. 리나가 신음을 삼켰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 보였다.


겔투스 가방에서 천을 꺼냈다. 약초 꾸러미도 있었다. 뭔지도 모르면서 으깨서 천에 싸고 옆구리에 대었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천으로 옆구리를 감아 고정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다.


"미안합니다."


말이 나왔다. 이번에는 나왔다. 빛은 나오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빛이 나오지 않는 것이 진실의 증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이 사람이 대신 싸워야 했다. 대신 맞아야 했다.


"미안합니다."


한 번 더 말했다. 리나가 나를 올려다봤다. 얼굴이 하얬지만, 눈은 맑았다.


"다음엔..." 리나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진심으로... 말해봐."


반말이었다.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반말을 한 것은. 무언가가 바뀐 것인지.


리나의 눈이 감겼다.


등에 업으니 갑옷이 무거웠다. 이 사람의 검이니까 검도 챙겼다. 말에 태울 수도 있었지만, 갈비가 부러진 사람을 말에 태우면 흔들림이 더 위험했다. 등에 업고, 말의 고삐를 한 손에 잡고, 남쪽으로 걸었다.


리나의 체온이 등에 느껴졌다. 숨소리가 규칙적이었다. 기절한 것이 아니라 잠든 것이기를 바랐다. 마을을 찾아야 했다. 약초가 필요했고, 쉴 곳이 필요했다. 핀의 약도는 산 북쪽에서 끝났다. 이 남쪽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있을 것이었다. 연기 냄새가 난다는 건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뜻이었다.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할 수 있는 건 걷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