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렸다.
공기가 달랐다. 회랑의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과 달리, 옥좌실 안에는 사람의 체온이 섞인 무거운 공기가 차 있었다. 향 냄새가 희미하게 깔려 있었고, 바닥의 석판에서 발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옥좌실은 신전보다 넓었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비슷한 것들이(촛불이 아니라 빛나는 돌이었다) 바닥까지 고르게 비추고 있었고, 좌우로 길게 늘어선 기둥 사이에 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갑옷을 입은 병사, 로브를 걸친 관리, 장식이 달린 옷을 입은 문관까지, 대충 세어도 30명은 넘었다. 기둥 옆에 서 있던 귀족 두 명이 나를 보며 무언가를 속삭였다. 한 사람의 입술이 "저게"라는 형태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정면, 계단 위에 옥좌가 있었다.
앉아 있는 남자는 4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왕관이 무겁게 이마를 누르고 있었고, 눈 밑에 그림자가 졌으며, 입술이 얇았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와 비슷한 종류의 피로가 거기 있었다.
도란이 내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폐하, 서약의 탑이 응답하여 용사가 소환되었습니다."
옥좌실이 술렁거렸다. 기둥 사이에 서 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헬멧은 벗었지만 여전히 검정 점퍼에 카고바지 차림이었고, 빗물이 반쯤 마른 자국이 어깨에 남아 있었다. 용사의 그림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적성은?"
도란이 멈칫했다. 그리고... 또 나왔다. 로브 소매 밖으로 삐져나온 손등에서 연두빛이 스쳤다. 신전에서 본 것과 같은 빛이었다. 도란은 재빨리 손을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적성은... 측정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구체의 반응이 불안정하여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정확히는, 사실을 감추는 말이었다. 구체의 반응은 불안정한 게 아니라 세 번 다 꺼진 거고, 수치를 확인하지 못한 게 아니라 역대 최하위였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동안 도란의 손등에서는 빛이 새어나왔다.
세 번째였다. 이제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 세계에서는 사실과 다른 말을 하면 몸에서 빛이 난다. 도란은 세 번 다 같은 패턴을 보여줬다. 무언가를 숨기거나 사실을 비틀 때마다 연두빛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나는 회랑에서 완전한 거짓말을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왕이 도란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시선이 도란의 손으로 향했지만, 도란이 이미 손을 숨긴 뒤라 빛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왕의 표정에는 의심이 남아 있었다.
"소환된 용사가 전투에 부적합할 수도 있다는 건가."
옥좌실이 조용해졌다.
내 차례였다.
이 상황을 정리하면 이랬다. 적성 최하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쓸모없는 존재에게 왕궁이 자원을 쓸 리 없었다. 처분이든 방치든, 이 세계에서 갈 곳 없는 인간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이 사회의 기본인 것 같았다. 도란이 빛을 숨기려 애쓴 것도, 왕이 도란의 손을 확인하려 한 것도 그 전제 위에 있었다.
나한테는 그 빛이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써먹을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리스크도 있었다. 만약 내 가설이 틀렸다면, 만약 회랑에서는 운 좋게 빛이 안 나왔을 뿐이고 여기서는 나온다면 적성 최하위보다 나쁜 상황이 된다.
해야 했다. 안 하면 어차피 끝이었다.
"폐하."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도란이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적성 검사가 이상하게 나온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 세계의 측정 방식이 저한테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옥좌실의 시선이 전부 나한테 쏠렸다.
"저는 고향에서 천 명을 지휘한 장군이었습니다."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천 명은커녕, 내가 지휘해 본 건 배달 루트의 순서 정도였다. 심장이 빨라졌다. 이 세계의 규칙이 나한테도 적용된다면, 지금 내 손등에서 빛이 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팔짱을 끼는 척하며 슬쩍 내 손등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옥좌실이 조용했다. 모두가 나를 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하나하나 받으며 내 몸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빛도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아무것도.
그리고 옥좌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의심과 실망이 서 있던 자리에 경외가 돌아왔다. 아까 신전에서 사라졌던 바로 그것이었다. 귀족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고, 병사들의 자세가 곧아졌고, 도란의 입이 벌어졌다.
왕이 옥좌에서 몸을 세웠다.
"장군이라... 적성과 별개로 전투 경험이 있다는 것인가."
"예, 폐하. 다만 제가 지휘한 전투는 이 세계의 방식과 다릅니다. 마나라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전략과 기만으로 싸웠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전략이라고 할 만한 건 출퇴근 시간에 덜 막히는 우회 도로를 찾아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완벽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고, 내 몸에서는 아무런 빛이 나지 않았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략과 기만이라."
왕의 옆에 서 있던 문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은발에 안경을 걸친 마른 남자였다. 눈이 좁고 입술이 얇았다.
"폐하, 확인이 필요합니다. 용사의 말이 사실인지 —"
"사실이 아니라면 빛이 나왔을 것이다."
왕이 잘라 말했다. 문관이 입을 다물었다.
그 한마디로 이해했다. 거짓말을 하면 빛이 나오고, 빛이 나오지 않았다면 사실이다. 그게 이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왕이 옥좌에서 일어서자, 키가 커서 옥좌실 전체가 숨을 멈추었다.
"300년 만에 서약의 탑이 보내준 용사다. 적성 수치가 낮다 한들, 탑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왕이 계단을 내려와 내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눈 밑의 그림자가 더 짙었다. 이 사람도 잠을 못 자고 있었다.
"용사여."
왕의 목소리가 옥좌실에 울렸다. 그리고... 왕의 손등이 빛났다. 연두빛이 아니었다. 금빛에 가까운, 안정적인 빛이었다. 도란처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보이고 있었다. 금빛이 밝아지면서 옥좌실 전체가 일순간 따뜻해졌다. 물리적인 온기가 아니라, 공기 자체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귀족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마왕을 쓰러뜨리면, 내가 그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겠다."
옥좌실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왕의 손등에서 나오는 금빛이 점점 밝아졌다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뭔가가 성립된 것 같았다.
왕이 내 눈을 보았다. 진심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 이 사람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마왕을 쓰러뜨리면 돌려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이 왕은 진심으로 지킬 생각이었다.
문제는 조건이었다. 마왕을 쓰러뜨려야 한다. 적성 최하위인 내가. 전투력이라고는 중학교 때 맞은 게 전부인 내가.
그리고 이건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고개를 숙이면서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잠깐. 이거 해고 불가 계약 아닌가?
마왕을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이 계약에 묶여 있다. 도망치면 왕의 약속도 무효가 되고, 나를 돌려보내줄 사람도 사라진다. 그렇다고 마왕을 때려잡을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옥좌실을 나서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왕이 다시 옥좌에 앉아 있었고, 귀족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도란이 안도한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다.
방금, 이 세계에서 가장 큰 거짓말을 쳤다. 그리고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일단... 살아남았다.
도란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용사님, 오늘은 왕궁 객실에서 쉬시게 됩니다. 내일 아침 여정에 필요한 장비와 호위 기사가 배정될 것입니다."
"호위 기사?"
"예. 폐하께서 직접 선발하실 겁니다."
"한 가지 여쭤도 됩니까."
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300년 전에 소환된 용사는 마왕을 물리치고 어떻게 됐습니까? 고향으로 돌아간 기록이 있습니까?"
도란의 걸음이 미세하게 느려졌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말을 고르고 있었다.
"300년 전의 기록은... 서약의 탑에 일부 보존되어 있습니다만, 소환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불완전합니다. 용사가 귀환했는지 여부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도란의 손등을 봤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돌아간 전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왕이 약속한 귀환이 실제로 가능한 건지, 그건 아직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다.
호위라. 싸울 줄 모르는 용사에게 호위를 붙여주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그 호위가 나를 지키려는 건지 감시하려는 건지였다.
객실로 향하는 회랑에서, 다시 달이 보였다. 두 개의 달.
이번 달 이자 180만 원. 아버지의 빚, 새벽 배달, 어머니의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