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인데 입만 살았습니다
18화

말이 남쪽으로 걸음을 옮긴 지 반나절이 지났다.


드라가의 조언대로 도로를 피해 숲길을 택했다. 마왕군 본대가 서남쪽으로 우회했지만, 소규모 정찰이 도로를 감시하고 있을 수 있었다. 숲길은 느렸다. 말이 나무뿌리에 발을 걸려 두어 번 고삐를 잡아야 했다. 리나의 말은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사람은 말도 잘 탔다.


리나는 반 보 앞에서 말을 몰았다. 새벽에 크롬홀을 나선 이후로 대화가 없었다. 필요한 말만 했다. "이쪽으로." "가지 조심하십시오." 그게 전부였다. 어젯밤 "호위 임무는 끝나지 않았으니까"라고 했지만, 그 이후로 호위 외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핀이 준 종이를 꺼내 봤다. 크롬홀에서 델포까지 이틀. 도로를 따르면 하루 반이지만, 숲길로 돌아가면 이틀 넘게 걸렸다. 물이 나오는 곳 세 군데가 표시되어 있었고, 첫 번째 지점이 반나절 거리에 있었다.


"물 표시가 있는 곳이 가깝습니다. 거기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리나가 고개만 끄덕였다.


숲이 얇아지면서 구릉 지대가 나왔다. 시야가 넓어지자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보이는 곳에 있으면 보인다는 뜻이었다. 구릉 사이로 이동했다. 꼭대기를 피하고 경사면을 따라 말을 몰았다.


구릉 하나를 넘었을 때 서쪽으로 도로가 보였다. 리나가 말을 세웠다. 나도 멈췄다.


도로 위에 수레 자국이 선명했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깊게 패인 바퀴 자국이 여러 줄 겹쳐 있었다.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가 여러 번 지나간 흔적이었다. 도로 옆 풀이 짓밟혀 있었고, 말발굽 자국이 수레 자국 양옆으로 나란히 찍혀 있었다. 호위 병력이 수레를 따라간 것이다.


"보급 수레입니다." 리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본대의 것입니다. 규모로 보면 이틀에서 사흘 전에 지나갔습니다."


마왕군이 이 길을 지나갔다. 우리가 가는 방향이었다.


도로에서 벗어나 다시 구릉 사이로 들어갔다. 한동안 말없이 달렸다. 구릉이 끝나고 다시 숲이 나왔을 때, 숲 가장자리에서 밭이 보였다. 작은 밭이었는데, 반쯤 수확된 채 버려져 있었다. 곡식이 익어 있었지만 거둘 사람이 없었다. 밭 너머로 작은 가옥 세 채가 보였다. 문이 열려 있었고, 사람은 없었다.


"피난 간 겁니다." 리나가 밭을 보며 말했다. "마왕군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떠난 거겠죠."


리나가 말에서 내려 가옥 하나를 확인했다. 잠시 후 돌아왔다.


"급하게 떠난 겁니다. 살림이 그대로 있습니다. 솥에 재가 남아 있는 걸로 보면 사나흘 전입니다."


마왕군이 지나간 시점과 맞았다. 곡식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익었는데 거둘 사람이 없는 밭. 크롬홀에서는 아이들이 "용사가 마왕군을 물리쳤다"며 다시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여기는 아무도 없었다. 크롬홀을 살린 거짓말이 밀어낸 300명이 이 길을 지나갔다.


물 표시가 있는 개울에 도착했다. 말에게 물을 먹이고, 물통을 채웠다. 개울가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크롬홀에서 가져온 말린 고기와 빵이었다. 리나와 나란히 앉아 먹었지만 대화는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뒤쪽 숲에서 나뭇잎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리나의 시선이 움직였다.


"델포에 가면 어떻게 할 겁니까?"


리나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했지만, 아침보다는 무뎌져 있었다.


"상황을 봐야 합니다. 마왕군이 먼저 도착했으면 들어갈 수 없고, 아직이면 경고라도 해야 합니다."


"경고요?" 리나가 물통을 닫으며 말했다. "거짓말로요?"


찔렸다. 하지만 목소리에 악의는 없었다. 어제 성벽 아래에서 질문을 던졌던 날카로움이 아니라, 확인하는 톤이었다.


"모르겠습니다. 크롬홀처럼은 안 됩니다. 성벽이 없으니까."


리나가 대답하지 않았다. 물통을 말 안장에 걸고 일어섰다.


다시 이동했다. 오후 내내 숲과 구릉을 번갈아 지나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그림자가 길어졌다. 핀의 종이에 두 번째 물 표시가 있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거기서 야영을 잡을 생각이었다.


한 번 리나가 갑자기 말을 세우고 손을 들었다. 숲 안쪽에서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리나의 손이 검 손잡이로 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소리 나는 쪽을 봤다. 사슴이었다. 덤불 사이로 뛰어가는 등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리나의 손이 검에서 떨어졌다. 아무 말 없이 다시 말을 몰았다. 심장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해가 질 무렵 작은 골짜기에 도착했다. 양쪽으로 낮은 언덕이 바람을 막아주는 곳이었다. 개울이 가까이 흐르고 있었고, 바닥이 마른 낙엽으로 덮여 있었다. 말을 나무에 묶고 안장을 내렸다.


불을 피우지 않았다. 연기가 보이면 위치가 노출된다. 마른 고기와 빵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둠이 내려오면서 숲 소리가 달라졌다. 낮의 새소리가 사라지고, 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만 남았다.


리나가 검을 무릎에 올려놓고 날을 닦고 있었다. 석양의 마지막 빛이 칼날에 반사되었다가 사라졌다.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리나의 손이 멈추지는 않았다. "뭡니까?"


"어제 질문... 용사의 방식이냐고 물었을 때, 그건 용사에 대한 질문이었습니까, 거짓말에 대한 질문이었습니까?"


리나의 손이 멈췄다. 검을 닦던 천이 칼날 위에 놓인 채 멈춰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 다입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무게가 있었다. 리나가 이어갔다.


"저는 거짓말이 싫습니다."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아르케나의 기사였고, 이 세계에서 거짓말은 빛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으니까.


"아버지가 거짓 서약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리나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더 낮고, 더 단단한 목소리.


"아버지는 기사단 교관이었습니다. 이 검도 아버지의 것입니다." 리나가 무릎 위의 검에 시선을 내렸다. "동부 국경에서 마수 소탕 작전이 있었고, 란트 백작이 지원 병력을 서약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서약을 믿고 선발대로 나갔습니다."


리나의 시선이 검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를 보지 않았다.


"서약대로라면 이틀 후에 후속 병력 200명이 도착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선발대 열두 명이 마수 무리를 유인하고, 후속 병력이 포위망을 좁히는 작전이었습니다. 열두 명이 200명을 믿고 미끼가 된 겁니다." 리나의 입술이 한 번 떨렸다가 다물렸다. "하지만 란트 백작이 서약을 어기고 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전선이 불리하니까 손절한 겁니다."


손절. 이익이 안 되면 빠진다. 그 귀족은 전장에서 사람 목숨이 걸린 서약을 비용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서약을 어긴 자에게는 마나가 역류합니다. 란트 백작은 역류로 한 달을 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았습니다." 리나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평평해서 그 아래 무엇이 눌려 있는지 느껴졌다. "아버지는 오지 않는 지원군을 기다리다가, 마수에게 둘러싸여 죽었습니다. 선발대 열두 명 중 여섯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리나의 손이 검 위에 놓여 있었다.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올려놓고 있는 것이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이었다.


"아버지를 죽인 건 마수의 이빨이 아닙니다. 거짓 서약입니다. 거짓말이 사람을 죽인 겁니다."


어둠이 깊어지고 있었다. 리나의 얼굴이 반쯤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 안에서 눈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리나가 나를 봤다. 눈이 젖어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거짓말로 사람을 구한 것과 거짓말로 사람을 죽인 것이 뭐가 다릅니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말이 만들어지다가 부서졌다. 의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살리려고 거짓말했고, 란트 백작은 자기 손해를 줄이려고 서약을 깼다고. 하지만 리나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결과 앞에서 의도를 말하는 건 변명이었다. 낮에 본 밭이 떠올랐다. 익은 곡식을 두고 떠난 사람들. 크롬홀을 우회한 마왕군이 그 옆을 지나갔다. 내 거짓말의 결과도 어딘가에 놓여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 사람 앞에서 그럴듯한 답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다른 건지."


오랜 침묵이 흘렀다. 개울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별이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 아버지의 일은, 미안합니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리나가 그걸 봤다. 이 사람은 내 거짓말에 빛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심이어도 빛이 안 나오고, 거짓이어도 빛이 안 나온다는 것을. 그런데도 이 사람의 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빛으로 확인할 수 없는 진심을 읽으려는 눈이었다.


리나가 고개를 돌렸다. 검을 천에 싸서 옆에 놓았다. 등을 보이고 누웠다. 대답은 없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확인할 수 없었고, 확인해서도 안 되었다.


별이 나오고 있었다. 이 세계의 별은 지구와 달랐다. 배치가 달랐고, 밝기가 달랐다. 하지만 올려다보고 있으면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같았다. 멀어지는 느낌.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 하늘 아래가 아닌 다른 하늘 아래에서, 아들의 문자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


핀의 종이를 다시 펼쳤다.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낮에 봐둔 경로가 떠올랐다. 내일 오후면 델포 근처에 도착한다. 마왕군이 먼저 도착했을 수도 있었다. 성벽이 없는 마을. 크롬홀과는 달랐다.


리나의 등이 보였다. 아버지의 검을 안고 누운 등. 이 사람은 답을 듣지 못했다. 나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도 이 사람은 반 보 앞에서 걸을 것이다. 떠나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