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리나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검을 허리에 차고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온 뒤였다. 망토에 이슬이 묻어 있었다. 어젯밤의 대화가 끝나지 않은 것을 이 사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나의 얼굴은 평소로 돌아와 있었다. 단단하고, 경계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기사의 얼굴.
"남쪽 1리쯤에 도로가 보입니다. 수레 자국이 어제보다 많아졌습니다."
보고였다. 감정이 아니라 정보. 어젯밤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것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리나가 원할 때 다시 꺼낼 것이다.
남은 빵을 나눠 먹고 출발했다. 핀의 종이를 꺼내 확인했다. 델포까지 반나절 거리. 하지만 마왕군 보급로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제보다 조심해야 했다.
숲길을 따라 말을 몰았다. 한 시진쯤 지났을 때 리나가 말을 세웠다. 앞에 길이 나뉘는 지점이었다. 왼쪽은 계속 숲 안쪽으로, 오른쪽은 도로 가까이로 이어졌다.
"도로 쪽으로 가야 합니다. 숲길은 여기서 동쪽으로 빠집니다."
핀의 종이를 다시 봤다. 리나가 맞았다. 델포로 가려면 결국 도로와 가까워져야 했다. 숲 안쪽으로 가면 델포를 지나쳐버린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숲이 얇아지면서 나무 사이로 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렸다. 수레 바퀴 소리였다. 나무 뒤에 말을 세우고 도로를 봤다. 수레 두 대가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곡물 포대가 실려 있었다. 수레 앞뒤로 무장한 병사 넷이 걷고 있었다.
마왕군 보급 수레였다. 어제 본 바퀴 자국을 남긴 것이 이런 수레였다. 수레 자국과 실물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병사들의 갑옷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크롬홀에서는 2리 밖에서 봤지만, 지금은 나무 몇 그루 사이였다.
리나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습관이었다. 수레가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숲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 같았다. 심장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병사는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갔다. 수레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리나의 손이 검에서 떨어졌다.
"뒤쪽에 더 있을 수 있습니다. 간격을 벌리고 이동합시다."
도로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숲 가장자리를 따라갔다. 나무와 덤불 사이로 도로가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수레가 한 대 더 지나갔다. 이번에는 빈 수레였다. 남쪽에서 물건을 내리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한 시진 뒤, 숲길에서 사람들과 마주쳤다.
가족이었다. 남자가 손수레를 끌고 있었고,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걷고 있었다. 큰아이는 대여섯 살, 작은아이는 여자의 등에 업혀 있었다. 수레에는 이불과 솥이 실려 있었다. 집을 버리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리나가 먼저 말에서 내렸다.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한 발 물러섰다. 남자의 시선이 리나의 검에 멈췄다가, 리나가 물러서자 긴장이 반쯤 풀렸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델포에서요. 어제 나왔소."
"마왕군이 들어왔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왔다기보다... 자리를 잡은 거요. 마을을 부수지는 않았소. 시장도 열리고, 사람들도 다니오."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큰아이가 어머니의 치마를 잡고 서 있었다. "하지만 도로마다 검문이 생겼고, 곡물 창고를 접수했소. 장사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고, 밤에는 통행이 안 되오."
"통제가 체계적이군요."
"군대라기보다 관리하는 느낌이오." 남자가 수레 손잡이를 바꿔 잡았다. "처음에는 다들 학살당하는 줄 알았소. 하지만 잡아가거나 죽이지는 않았소. 그냥... 다 자기네 것으로 만드는 거요. 창고, 길, 시장까지." 남자가 아이들 쪽을 돌아봤다. "큰애가 밤에 무서워하기 시작해서 나온 거요. 병사들이 순찰하면 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오."
약탈이 아니라 접수. 부수지 않고 빼앗는다. 마을을 부수지 않는 군대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부수면 다시 세워야 하고, 다시 세우는 건 비용이니까.
"나가는 건 자유입니까?"
"나가는 건 막지 않소. 들어오려면 통행증이 필요하다고 하더만."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북쪽으로 가시오. 델포에 볼 것 없소."
남자의 가족이 북쪽으로 걸어갔다. 큰아이가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아이의 눈이 크롬홀에서 막대기 검술을 하던 아이들과 겹쳤다. 크롬홀의 아이들은 "용사가 마왕군을 물리쳤다"며 다시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이 아이는 집을 버리고 걷고 있었다.
리나가 아이를 보고 있었다.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이동했다. 피난민이 한 무리 더 지나갔다. 노부부와 젊은 남자 셋이 소가 끄는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있었다. 그 뒤로 빈손으로 걷는 여자 둘이 따라오고 있었다. 북쪽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얼굴에 공포는 없었다. 피곤함과 체념이 섞인 표정이었다.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살 수는 있지만 자기 집에서 살 수 없어서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정오가 지나 구릉 위에 올라섰을 때, 남쪽으로 델포가 보였다.
성벽이 없었다. 핀이 말한 대로였다. 시장 건물과 창고가 줄지어 있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마을 북쪽 입구에 목책이 세워져 있었다. 검문소였다. 병사 넷이 서 있었고, 지나가는 수레를 멈춰 세우고 짐을 검사하고 있었다. 마을 동쪽 들판에 천막 여러 동이 보였다. 야영지였다. 연기가 다섯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리나가 말했다.
맞았다. 마왕군이 먼저 도착했다. 델포는 이미 마왕군의 영역이었다.
구릉 뒤로 물러나서 관찰했다. 학살이나 약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피난민이 말한 대로였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가게들이 열려 있었다. 다만 도로마다 무장한 병사가 서 있었고, 곡물 창고 앞에는 수레가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마왕군은 마을을 부수지 않았다. 유지하면서 보급 거점으로 쓰고 있었다.
"통과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왜요?"
리나의 질문이 짧았다. 돌아가는 길도 있다는 뜻이었다.
"남쪽으로 가려면 델포를 지나야 합니다. 무역로 사거리에 있는 마을이니까, 이 도로의 남쪽은 전부 델포를 통과합니다. 우회하면 며칠이 더 걸리고, 식량이 부족합니다."
리나가 검문소를 내려다봤다. 어제의 질문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질문과 지금의 상황은 별개였다. 리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검문소가 있습니다. 통행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리나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방법이 있을 겁니다."
"거짓말로요?"
예상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어제의 날카로움은 없었다. 확인이었다.
"아마요."
리나가 나를 봤다. 복잡한 시선이었다. 거짓말이 싫다고 했던 사람이, 거짓말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곳 앞에 서 있었다.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물면서 검문 패턴을 봐야 합니다."
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릉 뒤쪽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번갈아 검문소를 관찰하기로 했다.
오후 내내 관찰했다. 리나가 먼저 보고, 내가 교대하고, 다시 리나가 보는 식으로 돌렸다. 관찰하는 동안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불편한 침묵은 아니었다. 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검문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사람은 짐을 검사받고 신원을 확인받았다. 통행증이 있는 사람은 바로 통과했고, 없는 사람은 뒤쪽 천막으로 보내졌다. 나가는 사람은 별다른 검사 없이 통과시켰다. 수레가 들어올 때마다 병사가 뭔가를 기록했다. 체계적이었다.
"상인 수레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리나가 말했다.
맞았다. 보급 수레만 다니는 게 아니었다. 민간 상인의 수레도 검문을 거쳐 들어가고 있었다. 마왕군이 보급로를 유지하려면 상인이 필요했다. 물자가 돌아야 점령이 유지된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물렸다. 상인은 통과할 수 있다. 마왕군은 상인을 막지 않는다. 물자가 돌아야 점령이 유지되니까. 그리고 통행증이 없는 상인은 보급 천막에서 발급받을 수 있었다. 통행증을 발급하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행정관이었다. 숫자를 세고, 물자를 관리하고, 효율을 따지는 사람.
"방법이 있습니다."
리나가 돌아봤다.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좀 더 봐야 합니다."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검문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가 기울면서 검문소에 횃불이 켜졌다. 통행이 줄어들었다. 밤에는 통행을 막는다는 피난민의 말이 맞았다. 마왕군 야영지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국 끓이는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우리는 불을 피우지 못했다. 마른 고기를 씹으며 어둠 속에서 델포의 불빛을 봤다. 시장 쪽에서 등불이 보였다. 점령되었지만 살아 있는 마을이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리나가 물었다. 델포의 불빛을 보면서.
"마왕군이 물러나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죠."
"마왕군이 물러나지 않으면요?"
대답하지 못했다. 마왕을 쓰러뜨리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쓰러뜨릴 수 있는지, 쓰러뜨릴 수 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살아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죽이지 않고 관리하는 거면, 시간은 있습니다. 마왕을 쓰러뜨리면 이 사람들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말하면서도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리나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검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어젯밤의 질문이 아직 거기 있었다.
별이 나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저 검문소를 넘어야 했다. 방법은 떠올랐다. 문제는 리나였다. 거짓말이 싫다고 한 사람에게 거짓말판의 한가운데에 서라고 해야 했다.
검문소의 횃불이 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