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은 란델과 달랐다.
도로가 포장되어 있었다. 돌을 깔아 만든 길이었는데, 수레 바퀴가 지나간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양쪽으로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 시장에서 호객하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사람이 많았다. 란델의 열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주막부터 찾지요."
리나가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걸었다. 시장 한쪽에 주막 간판이 보였다. 리나가 들어가서 방을 잡는 동안, 나는 밖에서 거리를 봤다. 자경단원이 둘씩 조를 이루어 순찰하고 있었다. 창과 가죽 갑옷 차림이었는데, 움직임이 조직적이었다. 란델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방은 작았지만 침대가 두 개 있었다. 리나가 검을 벽에 세우고 갑옷을 풀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자경단 본부에 가겠습니다."
"자경단장을 만나야 합니까?"
"용사가 이 성에 들어온 이상, 보고하는 것이 절차입니다. 자경단장의 이름은 드라가. 여기서는 사실상 성주나 다름없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침대에 앉으면서 생각했다. 자경단장에게 용사라고 밝히면, 두 가지 결과가 나온다. 환영하거나, 의심하거나. 문제는 나에게 용사다운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카르텐이 지적한 대로, 검도 마법도 없는 용사는 이 세계의 상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자경단장에게는 카르텐과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카르텐은 개인이었으니 개인의 이해관계로 움직였다. 자경단장은 조직의 수장이다. 조직의 이해관계는 개인과 다르다.
잠이 오지 않아서 천장을 보다가, 리나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검을 안고 자는 모습이 어제와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란델에서는 벽 쪽을 보고 잤는데, 오늘은 방 안쪽을 보고 있었다. 무의식적인 것이겠지만, 경계의 방향이 나에서 밖으로 바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리나가 이미 갑옷을 입고 검을 차고 있었다.
"준비됐습니까?"
"네."
자경단 본부는 성 중앙의 석조 건물이었다. 2층짜리였는데, 정면에 크롬홀의 깃발이 걸려 있었고, 입구에 자경단원 둘이 서 있었다.
리나가 왕실 기사 신분을 밝히자 안으로 안내받았다. 2층의 방으로 올라갔다. 탁자 위에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의자가 셋 있었다.
문이 열리고 자경단장이 들어왔다.
50대 후반의 여자였다. 짧은 회색 머리에 왼쪽 눈 위로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갑옷은 입지 않았지만 허리에 단검이 있었고, 걸음이 군인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리나의 검을 봤고, 내 차림을 봤고,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드라가요. 크롬홀 자경단장이오."
짧았다. 이 사람은 말이 짧은 타입이었다.
"리나 카셀, 왕실 기사단 소속입니다."
리나가 검 손잡이의 왕실 문양을 보여줬다. 드라가가 문양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는 사람은?"
"왕실이 소환한 용사입니다. 이름은 태호."
드라가의 시선이 나에게로 왔다. 위아래를 훑었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옷, 검도 갑옷도 없는 차림. 드라가의 눈에 의심이 지나갔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용사가 크롬홀에 무슨 용건이오?"
"보급 보충과 남쪽 도로 상황 파악입니다."
리나가 대답했다. 드라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봤다.
"용사 본인은?"
리나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나섰다.
"드라가 단장,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드라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질문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크롬홀에 용사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이 성에 어떤 영향이 있겠습니까?"
드라가가 3초쯤 나를 봤다.
"무슨 뜻이오?"
"마왕군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크롬홀이 남쪽 경계의 최전선이라면, 사람들이 불안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용사가 이 성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됩니까?"
드라가가 입을 다물었다. 계산하는 눈이었다. 이 사람은 감정이 아니라 실리로 판단하는 타입이었다.
"사기가 오르겠지." 드라가가 짧게 답했다.
"자경단 모집도 쉬워질 겁니다. 피난민이 올라오고 있다면, 피난민의 발걸음도 빨라지겠지요. 용사가 지키는 성이 있다면, 거기로 모이지 않겠습니까?"
드라가의 눈이 좁아졌다.
"당신이 진짜 용사라는 보장이 있소?"
"왕실 기사가 호위하고 있습니다. 빛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손등을 펴서 보여줬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봤소." 드라가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카르텐이라는 사냥꾼이 성문 앞에서 당신과 이야기하는 걸 우리 경비병이 봤소. 사냥꾼이 수배서를 들고 있었다고 하더군."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하고 있었다.
"수배서의 내용은 아십니까?"
"란델 영주가 '왕실 사칭범'이라고 수배한 거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수배서에는 왕실 기사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왕실 기사가 공식적으로 움직였는데 영주가 그 사실을 빼고 수배서를 돌렸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드라가의 시선이 리나에게로 갔다.
"리나 기사. 란델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
리나가 사실대로 말했다. 법관의 횡포, 태호의 법리적 반박, 자신이 맹세의 서를 걸고 법관의 공무를 중지시킨 것. 리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빛이 나오지 않았다. 전부 사실이었다.
드라가가 탁자 위의 지도를 한 번 보고, 나를 봤다.
"란델 영주와 적을 만든 거군."
"그렇습니다."
"크롬홀은 란델 영주의 관할이 아니오. 수배서는 여기서 효력이 없소. 하지만 현상금은 사람을 움직이지. 카르텐 같은 사냥꾼이 더 올 수 있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드라가가 팔짱을 꼈다.
"들어보겠소."
"용사가 크롬홀에 있다는 소문을 자경단이 관리하세요. 공식적으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소문은 제 발로 퍼질 겁니다. 그 소문이 크롬홀에 도움이 되는 동안, 저에게 자경단의 보호를 제공해주십시오."
"보호?"
"수배서의 현상금 때문에 저를 노리는 사람이 생길 겁니다. 자경단이 성 안에서 현상금 사냥을 금지하면, 저는 안전하고, 크롬홀은 '용사가 있는 성'이라는 소문의 이득을 얻습니다."
드라가가 10초쯤 침묵했다. 흉터 위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진짜든 가짜든 소문이 도움이 된다는 뜻이오?"
"진짜입니다. 하지만 진위 여부보다 중요한 건, 그 소문이 크롬홀에 가져다주는 가치입니다."
드라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 쪽으로 걸어가서 밖을 봤다. 성벽 위로 순찰하는 자경단원이 보였다.
"마왕군이 올라오고 있소." 드라가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서쪽 30리 지점에서 척후대 흔적이 발견됐소. 본대는 아직 멀지만, 올라오는 건 확실하오."
30리. 구체적인 거리였다. 이 사람은 정보를 쥐고 있었다.
"크롬홀의 자경단원은 40명이오. 성벽은 있지만 수리가 필요한 구간이 세 곳이고, 보급은 왕도에서 오지만 길이 막히면 끊기오. 피난민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는데, 도적까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소."
드라가가 돌아서서 나를 봤다.
"이런 상황에서 '용사가 있다'는 소문이 도움이 되겠소?"
"됩니다."
"근거는?"
"사람은 사실보다 이야기에 반응합니다. '자경단이 40명이다'보다 '용사가 이 성에 있다'가 사기에 더 효과적입니다. 마왕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찰이 올라오면 소문은 듣게 됩니다. 용사가 있는 성을 정면으로 치는 것보다 우회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드라가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오?"
"저는 진짜 용사입니다. 마왕군이 이 소문을 듣고 우회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드라가가 5초쯤 나를 보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탁자로 돌아와 앉았다.
"좋소. 조건이 있소."
"말씀하세요."
"소문은 관리하겠소. 성 안에서 현상금 사냥도 금지하겠소. 대신."
드라가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용사가 성에 있는 동안은 방어 회의에 참석하시오. 소문을 팔았으면 소문의 값어치를 보여줘야지."
"방어 회의라면?"
"마왕군 대응이오. 정찰 보고, 방어 계획, 피난민 수용. 용사가 회의에 앉아 있으면 자경단원의 사기도 오르고, 당신이 뭘 할 수 있는지도 볼 수 있겠지."
날카로운 조건이었다. 회의에 앉으면 내 전투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면 거래가 깨진다.
"좋습니다."
드라가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서면서 리나의 검을 한 번 더 봤다. 검 손잡이의 왕실 문양이 아니라 검날의 상태를 보는 눈이었다. 검을 아는 사람이었다.
"숙소는 자경단 본부 옆의 건물을 쓰시오. 방 하나 비워두겠소."
리나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따라 인사하고 방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리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어 회의에서 어떻게 할 겁니까?"
"회의는 회의입니다. 앉아서 듣고 의견을 내면 됩니다."
"전투에 대해서요?"
"전투 이야기가 나오면 전투를 아는 사람에게 맡기면 됩니다. 저는 전투는 모르지만, 사람을 모으고 소문을 관리하는 건 할 수 있습니다."
리나가 나를 보다가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그게 될까요."
"안 되면 도망치면 됩니다."
리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봤다. 진심인지 확인하는 눈이었다.
"농담입니다."
"반쯤 진심이었을 겁니다."
"반쯤이요."
리나가 한숨을 쉬고 다시 걸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 사람은 요즘 한숨 뒤에 웃는 일이 늘었다.
본부를 나서니 시장 쪽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크롬홀은 살아 있는 성이었다. 대장간 소리, 시장 소리, 아이들 소리. 하지만 성벽 너머 남쪽에서는 마왕군이 올라오고 있었다.
소문을 팔았다. 이제 그 값을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