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하루가 이렇게 긴 줄 몰랐다.
성벽 위의 경계는 계속되었다. 깃발도 그대로, 교대 순찰도 그대로. 정찰대가 떠났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본대가 정면으로 오기로 결정하면 하루 안에 도달한다. 드라가는 자경단을 야간 교대까지 유지시켰고, 핀은 남쪽에 정찰 인원을 추가로 보냈다.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성벽 위에 올라가봐야 남쪽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이 마을의 운명이 종이 한 장에 달려 있었고, 그 종이를 쓴 사람이 나였다.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다.
리나가 성벽 아래에서 자경단원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제부터 그랬다. 기만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고, 리나는 일어났을 때를 준비하고 있었다. 리나의 검이 자경단원의 방패를 때리는 소리가 마당에서 올라왔다. 정확하고 빠른 소리였다. 저 검이 내일 진짜 쓰이지 않기를.
카르텐은 남쪽 성문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성 아래를 지키겠다"고 한 뒤 그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잠은 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있었다.
점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오후가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는 동안 온갖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돌았다. 서신을 무시하고 직진하면? 야간에 기습하면? 정찰대를 다시 보내 성벽을 면밀하게 살피면? 가까이만 오면 55명이라는 걸 들킨다.
생각을 끊었다. 이미 던진 주사위의 눈은 바뀌지 않는다.
성벽 위에서 남쪽을 보고 있는데, 핀이 올라왔다.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물었다.
"통할 겁니다." 핀이 남쪽 들판을 보며 말했다. "마왕군 지휘관이 보급을 중시하는 자라면, 용사가 지키는 성을 굳이 치지 않소. 보급 수레 여섯 대를 끌고 공성전을 하는 건 비효율이오."
"안 통하면?"
"그때는 싸워야지요." 핀이 성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리나가 자경단원의 자세를 고쳐주고 있었다. "저 사람도 그래서 준비하는 거 아니겠소."
해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남쪽 성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달려갔다. 핀의 정찰원이었다. 말에서 내리기도 전에 소리쳤다.
"본대가 움직였습니다!"
드라가의 방으로 갔다. 정찰원이 숨을 고르고 보고했다.
"본대 전위가 크롬홀 서남쪽 8리 지점에서 방향을 틀었습니다. 서남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크롬홀을 우회하고 있습니다."
드라가가 지도를 펼쳤다. 정찰원이 본대의 이동 경로를 손가락으로 그렸다. 크롬홀 서쪽을 크게 돌아 남쪽으로 향하는 호였다.
"보급 수레도 함께?"
"전부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합류부대도 본대에 합류했습니다. 크롬홀 방향으로 분리된 인원은 없습니다."
드라가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보였다. 미세한 변화였지만, 이 사람이 긴장을 푸는 것을 처음 보았다.
"우회요." 드라가가 말했다. 확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됐소."
됐다. 통했다.
숨을 내쉬었다. 이틀 동안 가슴 위에 올려져 있던 것이 치워진 느낌이었다.
드라가가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본대의 이동 경로 끝을 따라가며 물었다.
"다음 목표가 어디라고 보시오?"
핀이 지도를 살폈다. "크롬홀 남쪽으로 이틀 거리에 델포라는 장터 마을이 있소. 무역로 사거리에 위치한 곳인데, 성벽이 없소. 보급로를 잡으려면 델포가 유력하오."
드라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롬홀은 살았다. 하지만 델포는 성벽이 없었다.
"떠날 생각이오?" 드라가가 나를 봤다.
"마왕을 쓰러뜨리러 가야 합니다. 남쪽으로요."
"마왕군이 간 방향이오."
"네."
드라가가 창밖을 보다가 잠시 뒤 말했다.
"크롬홀은 잊지 않겠소. 당신이 한 일을."
내가 한 일. 깃발을 세우고, 없는 병력을 보여주고, 거짓 서신을 보낸 것. 드라가는 그걸 알고 있었다.
본부를 나왔을 때 성벽 위에서 자경단원 하나가 소리쳤다.
"마왕군이 남쪽으로 갑니다!"
소리가 성벽을 타고 퍼졌다. 자경단원들이 성벽 위에서 남쪽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움직이는 대열의 먼지가 보일 리 없는 거리였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있었고, 누군가 환성을 질렀다. 성벽 위에서, 성문 아래에서, 시장 쪽에서 소리가 올라왔다.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드라가가 성벽 위에 올라가 자경단에게 말했다. 짧았다.
"잘 싸웠소."
싸우지 않았다. 검 한 번 안 뽑았고, 화살 한 발 안 쐈다. 하지만 드라가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시장에서 축하 분위기가 올라왔다. 주민들이 자경단원들에게 술과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용사가 마왕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벌써 퍼지고 있었다. 물리친 게 아니었다. 속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정정할 수는 없었다.
핀이 남쪽 성문에서 올라왔다. 안도와 피로가 섞인 얼굴이었다.
"한 번 했으니까 다음에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말했다.
"알고 있소. 다음에는 용사가 없는 마을일 수도 있으니까." 핀의 목소리에 쓴맛이 있었다. 이 사람도 알고 있었다. 델라가 그랬다. 용사도 없고, 성벽도 약하고, 자경단도 모자랐던 마을.
카르텐이 성문 벽에서 몸을 떼고 다가왔다.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끝난 거요?"
"이번 건은요."
"그럼 나도 끝이오." 카르텐이 허리의 검 위치를 고쳤다. "수배서는 유효하지만, 지금 잡아봐야 데려갈 곳이 없소. 란델의 법관이 마왕군 앞에서 수배서를 처리해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떠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젯밤 성 아래를 지키겠다고 한 것은 리스크 계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다시 만나면 그때는 수배서대로 하겠소."
"그때까지 수배서가 남아 있으면요."
카르텐이 코웃음을 쳤다. 돌아서서 북쪽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 등에 맨 검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뒷모습이 성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봤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리나가 뒤에서 불렀다.
"잠깐."
멈추고 돌아봤다. 리나의 얼굴이 달랐다. 어제 성벽 위에서 "거짓말이시죠"라고 웃던 얼굴이 아니었다.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손이 검 손잡이 위에 있었는데, 평소의 습관과는 달랐다. 쥐는 것이 아니라 누르고 있었다.
"이런 게 용사의 방식입니까?"
목소리가 낮았다.
"거짓말로 마을을 지켰습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마왕군을 다른 마을로 보냈습니다. 성벽이 없는, 자경단이 없는 마을로.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대답할 수 없었다. 어제 성벽을 내려오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었으니까.
"55명으로 300명을 상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건 이유이지 답이 아닙니다."
맞았다. 리나의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경멸도 실망도 아니었다. 묻고 있었다.
"용사라면 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면으로 맞서서, 자기 힘으로."
"싸울 수 없는 용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리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알고 있으니까 묻는 겁니다. 싸울 수 없는 용사가 거짓말로 마을을 지키고, 그 거짓말이 다른 마을을 위험에 빠뜨리면... 그게 올바른 겁니까?"
"올바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크롬홀 사람들은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리나가 입술을 물었다. 몇 초간 나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어깨가 굳어 있었다. 검 손잡이를 누르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 돌아서서 평소보다 넓은 보폭으로 걸어갔다.
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실망했으면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 이 사람이 옆에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밤이 깊어갔다. 시장의 웃음소리가 잦아들면서 크롬홀이 조용해졌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꾸렸다. 많지 않았다. 겔투스가 만들어준 가죽 조끼, 망토, 물통, 말린 고기 약간. 용사의 짐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했다.
리나가 숙소 앞에 서 있었다. 뒤돌아보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섰다. 눈이 약간 붉었지만, 표정은 평소로 돌아와 있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합니다."
"어디로요?"
"남쪽으로. 마왕군이 간 방향으로."
리나가 잠시 침묵했다. 아까의 질문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질문과는 별개로 이 사람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같이 갑니다." 리나가 말했다. "호위 임무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호위 임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 사람도, 나도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리나가 돌아서서 자기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보폭이 아까보다 좁아져 있었다.
새벽, 남쪽 성문 앞에 섰다. 하늘이 어둠에서 회색으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드라가와 핀이 나와 있었다. 핀의 부하 하나가 말 두 필을 끌고 와 있었다.
"말은 크롬홀에서 빌려가시오. 남쪽 도로는 걸어서 다닐 곳이 아니오." 드라가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핀이 남쪽 정보를 정리해뒀소. 도움이 될 거요."
핀이 접은 종이를 건넸다. 남쪽 도로의 마을 위치, 물이 나오는 곳, 마왕군이 지나간 경로의 추정이 적혀 있었다.
"델포까지 이틀이오. 마왕군이 먼저 도착할 수 있소. 조심하시오."
핀이 한 발 물러서며 오른손을 가슴에 댔다. 자경단의 예법이었다.
성문이 열렸다. 남쪽 도로가 아침 안개 속에 곧게 뻗어 있었다. 마왕군이 우회한 방향이었다. 저 도로 끝에 델포가 있고, 더 남쪽에 마왕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을이 아직 잠들어 있었다. 어젯밤 축하하느라 늦게까지 깨어 있었을 사람들이었다.
리나가 말에 올라탔다. 나도 올라탔다. 뒤를 돌아보니 크롬홀의 성벽이 보였다. 깃발 열두 개가 아직 꽂혀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말이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롬홀이 작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