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가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나를 봤다.
"근거가 있습니까?"
"뒤쪽을 보세요. 무장 무리 뒤에 수레가 세 대 더 있습니다. 여자와 아이가 있습니다."
리나의 시선이 움직였다. 무장 무리 뒤쪽의 수레를 확인했다.
"도적이 가족을 데리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약탈이 목적이라면 벌써 수레를 뒤졌을 겁니다.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건, 뭔가를 요구하거나 경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리나가 상황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무장한 무리입니다. 제가 앞에서 —"
"제가 가겠습니다."
리나가 나를 봤다. 검도 없는 사람이 무장 무리에게 걸어가겠다는 말이었다.
"양손을 들고 가면 최소한 먼저 베지는 않을 겁니다. 리나 기사는 뒤에서 보고 계세요. 상황이 틀어지면 그때 나서세요."
"...얼마나 기다리면 됩니까?"
"칼이 저를 향하면 그때입니다."
리나가 한숨을 쉬었지만 검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보내되, 준비는 하겠다는 뜻이었다.
양손을 들고 무장 무리 쪽으로 걸었다. 심장이 빨라졌지만 걸음은 느리게 유지했다. 급하게 다가가면 위협으로 보인다. 30보, 20보. 피난민 쪽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가까워졌고, 수레 사이에서 짐을 부여잡고 있는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무장 무리의 외곽에 서 있던 남자가 내가 다가오는 걸 봤다. 도끼를 들어 올렸다.
"거기 서라!"
멈췄다. 양손을 더 높이 올렸다.
"무기 없습니다. 대화하러 왔습니다."
도끼를 든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선두에서 피난민 대표와 이야기하던 남자가 이쪽을 봤다. 35세쯤 되어 보였다. 단단한 체격에, 왼쪽 볼에 칼자국이 있었다. 낡았지만 정비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의 검 손잡이가 자경단 표준 장비와 비슷했다.
남자가 손짓으로 도끼를 든 부하를 멈추게 했다. 무장이 없는 사람 하나에 도끼를 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각적이었다.
"누구요?"
"크롬홀에서 왔습니다. 피난민이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나왔습니다."
남자의 눈이 달라졌다. 크롬홀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것이었다.
"자경단이오?"
"아닙니다."
"그런데 크롬홀에서 보냈소?"
"자경단장이 남쪽 상황을 파악해달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아니었다. 드라가가 직접 한 말은 "가서 확인하고 돌아오시오"였으니까. 빛은 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검도 갑옷도 없는 차림. 의심하는 눈이었지만, 무시하지는 않았다. 크롬홀이라는 단어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내가 물었다. "도적입니까?"
남자의 눈이 좁아졌다. 기분이 나빠진 게 아니라 피로한 표정이었다. 이 질문을 여러 번 받은 사람의 반응이었다.
"도적이었으면 수레를 벌써 뒤졌겠지."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 도적이 아니라면 피난민을 막는 이유가 뭡니까?"
남자가 나를 봤다. 말할지 말지 재고 있는 눈이었다. 결정은 빨랐다.
"핀이오." 남자가 짧게 말했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전직 자경단장이었소. 크롬홀 남쪽 델라 마을의."
"델라 마을이면..."
"마왕군에게 마을을 잃었소."
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한마디 안에 들어있는 것이 많았지만, 더 꺼내지는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이 사람들을 막는 게 아니오." 핀이 피난민 행렬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세우는 거요."
"세운다?"
"마왕군 정찰대가 이 도로에서 활동하고 있소." 핀이 목소리를 낮췄다. "사흘 전, 남쪽에서 올라오던 행상단 하나가 정찰대한테 걸려서 물자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쫓겨났소."
처음 듣는 정보였다. 방어 회의에서 드라가가 마왕군 척후대의 흔적을 말했지만, 도로 위에서 행상단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은 보고에 없었다.
"정찰대가 물자를 노리는 겁니까?"
"사람 둘셋은 건드리지 않소. 하지만 수레 달린 행렬은 표적으로 삼소. 물자를 차단하는 거요. 크롬홀로 올라가는 보급을 끊으려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는 무사히 지나온 것이었다. 사람 둘에 말 한 필이면 정찰대가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핀이 피난민 수레를 봤다. 수레 열두 대, 짐을 잔뜩 실은 행렬. 마왕군 정찰대 입장에서는 눈에 띄는 표적이었다.
"이 사람들이 이대로 도로를 올라가면 정찰대와 마주치오. 수레를 빼앗기고 끝나면 다행이지만, 저항하면 죽는 사람이 나오오."
그래서 막고 있었다. 약탈이 아니라 경고였다.
"그 말을 피난민에게 했습니까?"
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쓴웃음이었다.
"했소. 무장한 남자 열 명이 '도로가 위험하니 멈춰라'라고 하면 어떻게 들리겠소?"
맞는 말이었다. 신뢰가 없으면 경고도 위협이 된다.
피난민 쪽을 봤다. 수레 사이에서 중년 남자가 핀의 부하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비키시오! 우리는 크롬홀로 가는 거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피난민 쪽에서 보면 무장한 무리가 도로를 막고 통행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핀의 부하 중 한 명이 다가왔다.
"형님, 이 사람들이 안 듣습니다. 강제로 출발하겠다고 합니다."
핀의 표정이 굳어졌다. 손목에 끊어진 가죽 팔찌가 보였다. 중간이 잘려 있었고 매듭이 풀려 있었다. 낡은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끊어진 것이었다.
"강제로 막을 수는 없소." 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막으면 진짜 도적이 되오."
이 사람은 선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을 잃고 무장한 채 도로 위에 있지만, 그 선만은 넘지 않으려 했다. 경고하는 것과 강제하는 것 사이. 그 선을 넘으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핀 씨, 마왕군 정찰대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까?"
"정확한 위치는 모르오. 도로 여러 곳을 돌면서 순찰하고 있소. 5명에서 8명이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오."
"크롬홀까지는 여기서 얼마나 됩니까?"
"걸어서 반나절이오. 하지만 수레 행렬이면 하루는 걸리오."
하루. 수레 열두 대가 느린 속도로 이동하면 정찰대의 표적이 된다. 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크롬홀 자경단에 이 정보를 전하면 됩니다. 정찰대가 도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행상단이 공격당했다는 것. 자경단이 호위 인원을 보내면 피난민이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핀이 고개를 저었다.
"크롬홀 자경단에 가면 우리가 잡히오."
"왜입니까?"
"마을을 잃고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전직 자경단은 도적하고 구별이 안 되오. 임명장은 있지만 마을이 없으니 효력이 없소. 크롬홀에 들어가면 무장 해제 후 구금이오."
핀의 목소리에 쓴맛이 있었다.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전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피난민을 보호하려 하지만 도적으로 몰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겁니까?"
"다른 방법이 없소."
그 한마디에 피로가 가득했다.
뒤를 돌아봤다. 리나가 30보쯤 떨어진 곳에서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직 나서지 않았다. 내가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니 기다리는 것이었다.
"핀 씨, 하나 제안해도 됩니까?"
핀이 나를 봤다. 기대하지 않는 눈이었다. 기대가 깨진 횟수가 많았던 사람의 눈이었다.
"피난민 행렬을 크롬홀까지 호위하는 겁니다. 핀 씨의 무장 무리와 제 동행이 함께요. 크롬홀에 도착하면 제가 자경단장에게 핀 씨의 신원과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아까 말했소. 크롬홀에 들어가면 —"
"제가 보증합니다."
핀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보증? 검도 갑옷도 없는 사람이 뭘 보증한다는 거요?"
"크롬홀 자경단장 드라가와 거래를 했습니다. 면담이 가능하고, 발언권이 있습니다."
"당신이 누군데 자경단장한테 말이 통하오?"
핀의 질문이 정확했다. 검도 없는 사람이 크롬홀에서 왔다고 하고, 자경단장과 거래를 했다고 한다. 믿을 이유가 없었다.
"왕실 용사입니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핀의 눈이 내 손등을 봤다. 빛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 차림을 다시 봤다. 검도 갑옷도 없는 차림.
"...용사?"
뒤의 부하 몇 명이 웅성거렸다. "용사라고?" "란델에서 법관을..." 소문이 여기까지 와 있었다.
핀이 손을 들어 부하들을 조용히 시키고, 다시 나를 봤다. 핀의 눈에는 의심이 있었지만, 그 아래 다른 것이 있었다. 경솔하게 믿지도, 경솔하게 부정하지도 않는 눈이었다. 이 사람은 판단을 서두르지 않았다.
"용사가 자경단장한테 거래를 했다?"
"용사가 있는 성이라는 소문이 크롬홀에 도움이 됩니다. 그 소문을 자경단이 관리하고, 대신 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거래입니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핀이 그것을 봤다.
핀이 남쪽 도로를 봤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피난민 행렬에서 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핀의 부하가 피난민 대표와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오늘 밤까지 시간이 없소." 핀이 말했다. "정찰대가 이 근처에 있소. 해가 지기 전에 결정해야 하오."
핀의 시선이 내 뒤쪽의 리나에게 갔다. 갑옷과 검을 확인하는 눈이었다.
"뒤에 있는 사람은?"
"왕실 기사입니다."
핀이 다시 나를 봤다. 용사와 왕실 기사. 말은 그럴듯했지만, 이 사람에게는 말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자경단장이 우리를 잡으면... 당신이 책임지오?"
"잡히지 않게 하겠습니다."
빛이 나오지 않았다.
핀이 5초쯤 나를 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부하들을 봤고, 뒤쪽의 수레 — 자신의 가족이 있는 수레를 봤다. 결정의 무게가 이 사람의 어깨에 있었다. 자기 혼자가 아니라 부하 열 명과 그 가족의 안위가 걸린 결정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핀이 돌아서서 부하들에게 걸어갔다. 손목의 끊어진 팔찌가 저녁 햇살에 흔들렸다. 부하 두 명이 핀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핀이 짧게 대답했다. 뒤쪽 수레에서 아이가 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